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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어느 분의 오래된 당뇨병 완치 후기. 조영암

spensieve 2025. 1. 25. 03:43

너무 오래된 글이라서 여기서 먹는 식품은 요즘 그냥 파는 생 채소만 잘 먹어도 괜찮을 것 같고, 수치변화가 2달만에 완치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당뇨 치료 특효 식품 배합
  ===================================================
  ==  그것은 약품이 아니고 식품이었다.              ==
  ==  한 종류 보리, 현미, 콩 그래서 맥두미라 해서   ==
  ==  평상시에 우리가  먹는 식품인 것이고           ==
  ==  하나는 그것도 완전히 식품인  것이니           ==
  ==  다시마, 미역, 김, 돋나물 등 해초류였다.       ==
  =====================================================
  ==  해조분말 30%,                                  ==
  ==  율무배아 및 내배유 25%,                         ==
  ==  현미배아 및 내배유 24%,                         ==
  ==  대맥 20%,                                      ==
  ==  탄산칸슘 1% (미역40%, 다시마30%, 돛20%, 김10%). ==
  =====================================================





    제3편 완치기

  타성일편

  1986년 8월 00일

  그렇게 무덥더니 복이 지나간 날부터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름 
무더위보다는 당뇨쟁이는 가을이나 겨울이 지내기 좀 낫다고나 할까.
  한결 몸의 컨디션이  좋다.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보다야 날까만은, 다소 새기운이 조금은 
나는 것도 같다. 열무김치와 함께 말이다.
  이제 그 모질게 끈질기게 야멸차게, 도독하게 법당을 오르내리던 일은 조금 뜨음해졌다.
  일을 마쳤다지만 나는 한시도 나를 떠난 적이 없다. 조주종심 스님이 밥먹는 시간만이 
잡상을 하는 시간이고 그밖의 시간은 타성일편(한생각으로 쳐서 변치 않는 삼매의 상태)으로 
영원히 타성일편이 되는 시간이다.
  얼마나 위대한 조주인가. 타성일편이 그리 쉬운가. 그리 쉽지 않도다. 우리 백련암 스님은 
이 타성일편을 오매일여나 마찬가지 문자다. 마찬가지 표현이다. 그저 멍하니 무심도인이 
되는 상태인데 그냥 무심도인이 아니다. 사려와 분별이 끊어진 경지의 무심도인이다.
  다행히 관세음보살은 나로 하여금 그 철저한 나태증을 당뇨라는 불치의 병을 
선사함으로서, 죽음과 대결케 했다.
  나는 맹렬한 구도 정진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는 불은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제 열심히 관음을 염하여 이  망국의 병, 문명의 병, 부자 병이라는 악질 당뇨를 낮추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겠다.

  그래도 누에똥과 인삼 엑기스만이.
  1986년 9월 00일
  이 말씀은 어린 시절 선사스님으로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익히 들어왔다.
  그래서 우선 나는 내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정근을 하기 시작해서 벌써 얼마의 세월이 
흘러갔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관음시집의 소산도 있고 해서 나는 아무때라도 이놈의 당뇨병이 완치되리라고 생
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당뇨는 나의 육신을 못 살게 군다. 형편없이 못 살게 군다. 터무니없
이 못 살게 군다.
  이놈의 당뇨병 어디  한번 견디어 보라 이런 심보지만  어디 현실이야 그렇게 쉽사리 병이 
낫는가. 낫지 않으니 밤낮 이 병에 매달린다. 그리고 관음께 매달린다.
  밤을 새고 정근한다. 밤을 새고 정근해도 당뇨는 그대로 300이상의 혈당을 유지한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모진 병이요, 낫지 않는 허무의 병이다.
  한동안 육년근 홍삼의 인삼 엑기스가 좋다고 해서 종로에 나갔더니 한 병도 구할 수가 
없었다. 과연 내가 느낀 것은  나 같은 당뇨쟁이가 전국에 많기도 하구나 하고 느꼈었다. 한
달에 수십만개의 인삼 엑기스를 만들 터인데도 그게 동이 나서 없는 것이다.
  그래도 경동시장 부근에 갔더니 홍삼정도 약효가 꼭같다고 해서 그걸 사가지고 왔는데 
인삼 엑기스와는 그 효과가 천양지차였다.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인삼 엑기스는 상당한  효과가 있어서 다소의 혈당강하를 초래하였기에 전국적으로 
엑기스 기근이 일어난 것이다. 엑기스는 어딜 가도 없었다. 용케 한 병 구해다가 
먹어보았더니 처음엔 조금 효과가 있는 것 같아  희안하구나. 아아, 이것으로 당뇨는 치료가 
되는 법인가 보다. 하고 안심가지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 세 병을 먹고 다섯 병째 먹어 보았으나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체질에 
따라서는 더 조금씩 효과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는 큰 효험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것이 아직도 구하기 
그리 쉽지만은 아닌 것을 보면 아직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복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인삼 엑기스, 홍삼  육년근을 찌다가 그 삼에서 떨어져  나오는 검은 액체, 그것은 인삼의 
정수인지 모른다. 그  정수를 먹고 당뇨가 완치됐다는 말은  아직도 듣지 못했고, 그저 조금 
혈당이 하강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무슨 구세주나 만난듯, 영험스런 신령님이나 
만난 듯 홍삼 엑기스를 찾아 헤맨다.
  수백 가지의 토속적인 약품을 거의 다 먹어보았지만 혈당치를 내리게 하는 데는 그래도 
누에똥과 운동요법과 인삼엑기스  정도였다. 이밖에는 수백 수천가지의 민속적인 치료약이란 
것들이 모두 차이는 조금씩 있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있다면 정신적인 
다소의 위로와 희망적인 아전인수식 효험론이 대부분이었다.
  실은 육 년 동안 수많은 약을 섭렵했으나 혈당강하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당뇨병은 혈당이 높은 것이 그  병통의 근본이다. 그 근본을 그냥 놔두고 치유를 바라기는 
연목구어가 아닐 수 없겠다.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를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살아날까 하고 어떡하면 
사회생활에 장애가 없는가 하고,  어떡하면 이 놀라운 무기력증과 심각한 탈력증에서 해방할 
수 없을까 하고 사람들은 헤매지만 헤매는 만큼 약도 여러 가지를 쓰게 되어 병의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
  이미 고인이 된 나의 친구 한 사람은 결국 당뇨의 다섯 가지쯤 합병증으로 쓰러지고 
말았는데 약의 종류도 여러 가지 약을 먹어왔다. 누가 좋다고 말하는 약은 거의 다 먹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당뇨가 나을 리가 있었겠는다. 그중에도 그는 값이 비싼 보약을 
중심으로 먹었다. 물론 기운이 없었으니 할 수가 없고 할 터이지만 혈당이 강하하지 
아니하는 당뇨약은 먹어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강릉엔가 어디 침으로 당뇨를 완치한다는 
말을 듣고 한두  번 오르내리다가 독감에 걸려 그만  종말을 고하고 말았는데 그는 말년에는 
괴저병의 치열한 벌병으로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대소변을 가누지도 못하다가 마지막을 
맞이했으니 얼마나 당뇨라는 것이 무서운 병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는 아주 말기에는 백내장으로 눈까지 망가져서 보지도 못하고 고통을 받다가 가고 
말았으니 얼마나 당뇨가 지긋지긋한 병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위에 누구하나 
수발드는 이도 없이 쓸쓸이 외로이 가 버렸으니 그의 최후가 마음에 괴롭기만 하다.
  당뇨로 죽어가는 사람은 요즈음은 별로 없다. 인슐린을 맞으면 대개 보통사람과 같은 
기력이 발생하니까.
  그러나 당뇨의 합병증이  제일 무서운 것이니 그게  문제다. 합병증만 발생치 않으면 별로 
근심할 게 못된다.

  관세음보살이 지시하시기를.
  1986년 9월 00일
  선시총서 첫권의 OK교정이  나왔다. 눈코 뜰 새 없이 교정을  봐야 하고, 또 이 글을 써야 
하고.
  그러나 이놈의 당뇨는 이제는  뿌리를 뽑아야겠는데 그게 큰일이다. 뿌리가 뽐히기는커녕, 
점점 장대한 세력으로 내 몸의 처처에서 내 몸의 모든 조직에 침투하여 내 몸을 갉아먹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놈을 박살내고 내가 나의 건강을 되찾는 길을 발견해야겠는데 거의 가망이 없어 
어디 한 번 이번엔 관음께 다시 한번 빌붙어 보기로 하자.
  관음보살대의왕의 시집은 내고 하였지만 이제 다시금 집요스럽게, 끈덕지게, 다부지게 
관음께 빌붙어보기로 하자. 무슨 방법을 교시해 주시지 않을까 하고
    혹은 왕난의 구테타를 만나서
    형벌에 임하여 그 목숨 다할 때라도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힘으로
    망난이 칼이 조각조각 부서지리니.
  하셨고,
    혹은 포승으로 온몸을 얽어매고
    손과 발에는 족가를 씌웠다 해도
    관음보살 염하는 힘으로
    석연히 해탈함을 얻으리니.
  하셨고,
    가령 해칠 생각 크게 일어나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던질지라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위신력으로
    불구덩이 변하여 못을 이루나니.
  하셨고,
    중생들 곤란과 액을 입어서
    한량없는 고통이 몸을 핍박하여도
    관세음보살의 묘한 지혜의 힘
    능히 이 세상 모든 고통을 구제할지니
    신통력을 다 갖추시옵고
    널리 지혜 방편 닦은 관계로
    시방 시계 모든 여러 나라에
    그 몸을 나타나지 아니함 없네.
    여러 가지 악취와 
    지옥이나 귀신이나 축생에게까지도
    그들의 생로병사 고통을
    점차로 모두다 없애주리니.
  하셨고,
    일체의 공덕을 두루 갖추어
    사랑으로 모든 중생 감싸주노니
    그 다함없는 복 바다와 같아
    이런고로 빽빽히 큰절하노라.
  이 글들은 다 법화경 보문품(관음경)에 있는 구제의 논리이다.
  관음의 구제 의식은 천고에 뻗혀 동서양에 뻗혀 광대무변하며 영원무궁하다. 그러므로 
관음기도하고서 성취치 못하는 일이 없다.
  젊은 시절부터 내 모든 어려운 일이란 다 관음께서 지시하시고 해결하여 주셨으니 말이다.
  나는 이제 참선할 일은 일단 마친 것으로 보고 관음기도에 의한 당뇨완치만 남았다 할 
것이다.
  참선 또 참선만 하노라고 육체는 거의  말기 상태에 놓여 있게 되었다. 누가 보면 저 사람 
중병이군 할 정도로 나빠진 것이다.
  이제 맹렬히 관음 정진만 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나는 또다시 법당을 오르고 내리고 
하였다. 법당 안에선 매일밤 목탁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신통력을 구족하시와
    널리 지혜 방편 닦으시사
    시방 세계 어디라도 어느 국토도 
    나타나지 아니함이 없으시도다.
  구족신통력하시고 관수지방편하사 시방제 국토에 무찰불현하시는도다 하고 말을 마치자 
그날밤의 법당은 광명으로 그득하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서기 방광에 어찌할 줄 모르고 환희심이 솟아 수백 수천 배의 절을 
올렸다.
   기필코 당뇨병은 근심치 말거라. 내 알아서 낫게 해줄 터이니. 하는 신호와 같았다. 
무한한 예배와 무한한 친호낭송과 내 관음시집의 일부가 나의 목구멍에 노래로 울려 퍼져 
나왔다.
  나는 울고 있었다. 인간은 기뻐도 운다던가. 관음의 명호가 천지가 떠나가라 하고 울려 
퍼졌다.

  도우 스님이 먹으라기에.
  1986년 10월 00일
  당뇨병이 좀 뜸해지니까 여기저기서  설법요청이 밀려왔다. 큰 재가 들거나 사십구재가 들
거나 하면 나를 큰스님이랍시고 청해다가 설법을 하게 하는 것이다.
  더욱 친한 사이고 보면 이를 거절할 수가 없다. 북한산 문수사 주지 허혜정 스님은 호형호
제하는 사이다.
  법당이 화재에 탄 후 십 년 가고 끝에 상량식을 하게 됐는데 나더러 와서 설법하라기에 그 
드높은 북한산 꼭대기를 허위단심 걸어  올라갔다. 두 시간이나 산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높
은 암자다.
  문수사는 우남 이승만의 부모가 기도해서  우남을 얻었다 해서 우남의 필적도 있고 바위동
굴도 있고 해서 유명하며 문수 도량으로 경향간에 이름이 있어 온 암자다.
  그날 나는 상당히  설법을 잘한 셈이고 범패에 능한  도우스님은 그 특유의 범패로서 재를 
잘 올렸다.
  그렇게 드높은 산꼭대기지만 그후 불사는 순조로이 성취되어 법당도 다 완성됐고 했었다.
  그런데 도우스님도 공교롭게도 당뇨에 걸려서 고생하고 계셨다. 
내가 살당초(해당초)를 사먹고 효과가 있었다 해서 스님께  권했더니 
스님도 해당초를 사 잡숫고 해서 동병상련으로 서로 약이 좋은게 있으면 권고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도우 스님한테서 기가 막힌 낭보가 걸려왔다. 
자기는 한달을 복용하고 혈당 240이 83으로 떨어져 완쾌했으니 
영암도 한번 잡숴보라는 권고였다.
  그는 그 오랜 당뇨가 완치됐다고 해서 수무족도할 지경이라고 했다. 
도우 스님의 그 고질적인 당뇨가 완쾌가 되다니 실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만고의 고질, 만고의 완치되지 않는 병, 죽을 때까지 끼고 가야할 무서운 고질병, 
그 무서운 고질병은 양방으로 치료되지 않는다는데 무슨 방법으로 
그것을 완치했는지 기적이 일어났다. 
관세음보살이 지시해 주시는가 보다 하고 나는 긴장했다.
  한달 만에 혈당 240이 83으로 하강하는 약, 
이것은 거의 인슐린에 해당하는 무서운 혁명적인 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선 빨리 약명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배달해 달라고 했다.


  ===================================================
  ==  그것은 약품이 아니고 식품이었다.              ==
  ==  한 종류 보리, 현미, 콩 그래서 맥두미라 해서   ==
  ==  평상시에 우리가  먹는 식품인 것이고           ==
  ==  하나는 그것도 완전히 식품인  것이니           ==
  ==  다시마, 미역, 김, 돋나물 등 해초류였다.       ==
  =====================================================
  ==  해조분말 30%,                                  ==
  ==  율무배아 및 내배유 25%,                         ==
  ==  현미배아 및 내배유 24%,                         ==
  ==  대맥 20%,                                      ==
  ==  탄산칸슘 1.0(미역40%, 다시마30%, 돛20%, 김10%). ==
  =====================================================


그러나 나는 이 약을 받는 순간  아아, 이 약이면 내 당뇨도 완치될 것이다.  
라는 결정적인 신념과 인상을 받았다. 
그 결정적인 인상과 신념, 이것이 문제의 치병효과가 100%였다. 
도우 스님 자체도 이 약품, 약품이 아니라 식품을 먹고 완치된 것이다.

  나도 한달에 식품값 66,000원의 이  식품을 먹기 시작하였다. 
 식후에 반드시 한 봉지씩 두 봉지를 입에 넣고 물을 마시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먹기를 사흘째였다. 

  나는 이상한 자각증상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상한 자각증상, 그것은 걸음걸이에 힘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는 걸음마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맥이 풀린 걸음걸이가 옛날의 활보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팔목과 팔굽과 발목과 무릎 등에 다소의 힘이 생기는 것이 이상하였다.

  이 식품은 별로  약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식후에 한  봉지씩 두 봉지만 입에 털어넣으면 되는 것이다.
 열흘쯤 먹었을 때에는 이 식품이면(혹은 이 약이면)
 내 당뇨는 뿌리째 뽑힐 것 같았다.

 320의 혈당이 열흘만에 280으로 강하했다.
  나는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저녁마다 쏘기 시작한 양쪽 발의 새끼발가락이 쏙쏙쏙 따끔따끔하던 것이
 훨씬 줄어들었다. 들 따끔뜨끔하고 들 쏙쏙했다.
 견딜 만큼 쏘고 견딜 만큼 따끔거렸다.

   아아, 내가 살아나는구나.   하고 나는 일종의 장탄식을  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머리가 빠개지도록 아프던 골이 덜 아프기 시작하였다.
 혈압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혈당도 조금씩 내리고  혈압도 조금씩 내리고 하니까
 전신의 가려움증도 조금은 덜한 것 같았다.

 저녁이면 더욱 밤이 되면 문둥병 모양 벅벅벅 긁던 것이 조금 뜸해졌다.
 몸에 다소의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실로 희한한 일이고,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밥맛도 있는 것 같다.

  해인사 백련암 스님을 만나 이래로 아마도 아무개의 말마따나
 엔돌핀이 다량으로 생긴 관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드레날린은 감소되고 엔돌핀은 한없이  증가되고,
 이래서 그 약은 먹기 시작한지 보름이 지나니까 나를 처음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   고 말했다.
 무기력증과 탈력증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따끔따끔 쏙쏙 쑤시던  것이 조금만 더했으면 하고 생각하면 
 그 이튿날은 거짓말처럼 그것이 감소되어 갔다.
  그리고 피곤함이 훨씬 덜해 왔다.
 아아, 당뇨는 점차로 나아가고 있구나.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기적은 내 혈당을 낮추었다

  1986년 11월 00일
  도우 스님 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을 먹고 좀 어떠냐?  는 문병전화다.
   거의 나아가는 증세가 보여요.  하고
  스님 덕분으로 기사회생하는 것 같습니다.  했더니 
 약값턱 내야지.  하였다.
 내 말이  약값뿐이리까? 기사회생값은 얼마든지 청구서를 작성하여
 등기우편으로 보내시오.  하였다.
  그랬더니  이제 영암이 성인병을 극복했으니 이 세상 많은 사람에게
 당뇨병 극복할  방법을 연구해 보시오.  하였다.
 하구말구, 나는 드디어 완치당뇨일기를 쓸 결심을 하였다.

  그 실망의 세월, 그 부담의 세월,  그 암흑의 세월,
 그 참담한 무기력의 세월 사는 수많은 당뇨인들에게
 희망과 소생에의 꿈을 안겨주고 싶었다.
  오늘의 혈당치 250이었다.
 나날이 떨어지는 혈당치와 내가 되찾는 건강치 그것은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전국에 있는 수백만 당뇨병 환자에게 외치고 싶은 생각이
 이때부터 내 가슴속 깊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어떡하면 그  불치의 병이라던 당뇨가 치료될 수 있을까 하고
 전국의 환자들은 고민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이제 이 병에서 해방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병이 나아가는 자각증상이 보인다

  1986년 11월 00일
  오늘의 혈당은 240이었다. 340에서 100이 떨어진 것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훨씬 몸이 가볍고, 기운이 나는 것같고 힘이 솟는 것 같았다.
 이렇게 기분좋은 일이 다시 있을까.


  백련암에서 큰스님 인가를 받았을 때는 천지가 무너지는 기쁨을 맛보았거니와 요즈음 나의 
병상의 치유는 그에 버금가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실로 놀라운 자각 증상이었다.
  하루 종일 독서를  해도 좋고 하루종일 일을 해도 좋다.  이내 권태증이 나던 일은 옛일이 
되어 버렸다.

  일일시호일
  1986년 11월 00일
  도우 스님께 전화를 올렸다.
   스님 덕분으로 저도 혈당이 점차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두 달 더 먹으면 완치의 단계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아마 연때가 맞은 것이 아니라 통계에 의하면 거의 정당한 치유율인 것 같습니다.
  하고 고마운 전화를 드렸다.
 이때의 기분을 저 운문문언 선사의 나날이 좋은 날이로고.
  에 비유할 만할 것 같았다.
 깨친이의 나날은 일일시호일이요,
 깨치지 못한이의 나날은 일일시악일일 것이다.
 그것은 심조만유이기 때문이다.
 일체유심조이기 때문이다.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

  백가지 천가지 약을 다 써 봤지만 하나도 듣는 것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혹시나 하고 얼마나 많은 기만을 당해 왔던가.

  해초류와 맥미두로 나의 불치의 병을 고칠 뿐 아니라
 수천 수만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날개돋힌 우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당뇨 덕분으로 용맹정진케 되었고 당뇨 덕분으로
 선종의 거목이 될 소지를 닦았으니 말이다.
 선종의 거목, 그것은 이 나라 정신문화계의 거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연 나 같은 하근기가  거목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거목은 바라지 않지만 선종의 조약돌이 되기를 바란다.



  등산로에서 만난 사람들
  1986년 11월 00일
  국민대학 뒷산은 나의 당뇨병과 싸우는 등산로였다.
 그곳에선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숲이 있다.
  서구의 사람들은 요즈음  삼림욕이라 해서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거니와 나의 이 산골행은 거의 매일 끊이지 아니했다.

  그곳에 가면 맑은 공기와 삼림뿐이 아니고 많은 물꾼들을 만난다.
 그 물꾼들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수돗물의 질이 좋지 않아서인지 물꾼들의 숫자는
 요즈음 들어 엄청나게 늘어간다.
 그 많은 물꾼뿐 아니라 그들 물꾼과 함께 산에 오르는 분의 대부분이 
 중풍이 아니면 당뇨다. 중풍보다는 당뇨가 더 훨씬 많다.
  그들 당뇨쟁이와 만나면 서로 반갑다.
 정보교환과 병세의논이며 무슨 약이 더 좋다던가 
 나쁘다든가 해서 서로 병을 의존한다.
 병력이 20년이나 30년씩 되는 당뇨의 대선배들도 개중에는 있어서
 나를 놀라게 한다.
 그들은 대개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관망하거나, 
 실의에 빠져 있거나 해서 희망이 없는 말만 한다.
 가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국민대학 뒷산에서 만난 수많은 당뇨쟁이들을 지금 생각하면
 모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쓰는 이 글이 다소의 원기라도 공급해준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증상이 호전되다
  1986년 11월 00일
  나날이 혈당이 조금씩 내리고
 옛날의 그 원기의 몇 분지 일이라도 찾아 가고 있는 지금 
 열무김치와 함께 밥맛도 저절로 난다.
 늙으면 전체미각의 삼분의 이를 상실한다고 해서 

천자문에 보면
    늙은이와 젊은이의 양식이 다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밥상의 고기는 늙은이에게 주고
 젊은 사람들은 고기엔 손을 대지 말라는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나의 혈당이 강하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지만,
 우선 저녁이면 따끔따끔 쏙쏙 쑤시던 것이 그 감도가 다르다.
 덜 따끔거리고 덜 쏙쏙거리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목이 덜  타고, 전신소양증(전신이 가려운 증세)이  없어져 가는 것이다.
 덜 가려운 것이다. 벅벅 긁던 어깨나, 등이나, 허리가 훨씬 덜 가려웁다.
 전신소양증이 반감된 것이다. 
 그 몹시 가려웁던 견딜 수 없이 가려웁던 것이
 훨씬 덜 가려워서 우선 살 것 같았다.

  오늘의 혈당 230, 나날이 줄어드는 혈당,
 이렇게 가다가는 100전후의 정상치를 환원할 것이 아닌가.
  하루하루가 신기하다.
 아무리 달개비풀, 쇠뜨기풀, 해당초 등을 마셨어야
 이렇게 점진적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설산과 어산이 반갑다는 전화가 왔다.




  식품섬유의 효과

  1986년 11월 00일
  여기에 원광대학 의과대학  교수 조정구 씨와
 원광대학 약품연구소의 김재백 양씨의 연구 데이타는
 우리에게 더욱 강력한 효과와 신통한 혈당강하를 결과하여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구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의해 식물섬유의 결핍이
 당뇨병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이래
 1986년 미국 당뇨병 학회는
 당뇨병 환자의 식사지침 중 46g 정도의 식품섬유의 섭취를 권장하여
 당뇨병의 조절에서 식품섬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식품섬유는 혈당강하뿐이 아니라
  혈청, 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의 감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이 합병된 각종 질병에도 그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이 연구 통계론은 원광대학 의과대학의 조정구 교수와
 원광대학교 약물연구소의 김재백 양씨에 의해 시험통계되었는데
 거의 30명 전원이 혈당이 개선된 것으로 되어 있다.




  원광대 의과대학의 실험통계

  1986년 11월 00일

  해초과립(B제약제공)의 성분 배합 비율을 여기 소개한다.


  ===================================================
  ==  그것은 약품이 아니고 식품이었다.              ==
  ==  한 종류 보리, 현미, 콩 그래서 맥두미라 해서   ==
  ==  평상시에 우리가  먹는 식품인 것이고           ==
  ==  하나는 그것도 완전히 식품인  것이니           ==
  ==  다시마, 미역, 김, 돋나물 등 해초류였다.       ==
  =====================================================
  ==  해조분말 30%,                                  ==
  ==  율무배아 및 내배유 25%,                         ==
  ==  현미배아 및 내배유 24%,                         ==
  ==  대맥 20%,                                      ==
  ==  탄산칸슘 1% (미역40%, 다시마30%, 돛20%, 김10%). ==
  =====================================================


  이상을 발명특허(32408)공법에 의하여 발효시켜 제조한 제품임.
 이 통계 내용은 병력과 검사실 소견에서
 인슐린 비의존형 당뇨병으로 처음 진단되거나 약물요법을 받고 있던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이 과립을 1일 3회, 1회에 2포씩 매식후에 복용토록 하였으며
 인슐린 치료가 필요한 경우나 당뇨병 합병증이 있는 환자는 제외되었고,
 식사요법이 잘되지 않거나 공복감 때문에
 식사요법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는 제외되었고,
 식사요법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를 주로 선택해서 투약하였다.

  대상 환자의 연령분포는 36세에서  67세(평균 52세)로
 남자 13명, 여자 17명이었고
 체중은 정상이거나 정상 이상의 범주였다.
 악물투여중 일상적인 식사습관은 별로 변화시키지 않았으며
 2주 4주 8주 12주에 각각 공복시 혈당 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을 특정하였다.

 통계처리는 정확을 기하여 검정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를 다음표에 기록한다.

  58세 혈당치:244혈당 2주후(240), 4주후(233), 8주후(113), 12주후(141)
  53세 혈당치:276혈당 2주후(261), 4주후(241), 8주후(253), 12주후(194)
  62세 혈당치:259혈당 2주후(318), 4주후(238), 8주후(259), 12주후(182)
  64세 혈당치:260혈당 2주후(292), 4주후(274), 8주후(173), 12주후(150)
  64세 혈당치:340혈당 2주후(381), 4주후(308), 8주후(231), 12주후(182)
  56세 혈당치:279혈당 2주후(203), 4주후(180), 8주후(139), 12주후(125)
  67세 혈당치:194혈당 2주후(125), 4주후(286), 8주후(143), 12주후(114)
  58세 혈당치:242혈당 2주후(182), 4주후(122), 8주후(152), 12주후(118)
  46세 혈당치:404혈당 2주후(373), 4주후(X), 8주후(188), 12주후(133)
  65세 혈당치:169혈당 2주후(139), 4주후(120), 8주후(173), 12주후(135)
  54세 혈당치:262혈당 2주후(X), 4주후(187), 8주후(170), 12주후(X)
  53세 혈당치:205혈당 2주후(182), 4주후(311), 8주후(190), 12주후(183)
  56세 혈당치:191혈당 2주후(237), 4주후(258), 8주후(173), 12주후(165)
  51세 혈당치:200혈당 2주후(177), 4주후(291), 8주후(187), 12주후(123)
  62세 혈당치:301혈당 2주후(252), 4주후(X), 8주후(X), 12주후(X)
  48세 혈당치:249혈당 2주후(175), 4주후(140), 8주후(141), 12주후(154)
  49세 혈당치:336혈당 2주후(226), 4주후(216), 8주후(184), 12주후(148)
  42세 혈당치:218혈당 2주후(202), 4주후(X), 8주후(X), 12주후(X)
  36세 혈당치:279혈당 2주후(253), 4주후(260), 8주후(201), 12주후(180)
  47세 혈당치:138혈당 2주후(135), 4주후(118), 8주후(101), 12주후(X)
  38세 혈당치:214혈당 2주후(195), 4주후(X), 8주후(189), 12주후(162)
  40세 혈당치:169혈당 2주후(X), 4주후(158), 8주후(151), 12주후(132)
  47세 혈당치:167혈당 2주후(X), 4주후(135), 8주후(121), 12주후(118)
  46세 혈당치:224혈당 2주후(X), 4주후(X), 8주후(176), 12주후(134)
  58세 혈당치:119혈당 2주후(115), 4주후(114), 8주후(101), 12주후(108)
  39세 혈당치:241혈당 2주후(220), 4주후(172), 8주후(169), 12주후(104)
  45세 혈당치:252혈당 2주후(242), 4주후(188), 8주후(165), 12주후(104)
  53세 혈당치:163혈당 2주후(171), 4주후(149), 8주후(132), 12주후(116)
  53세 혈당치:221혈당 2주후(159), 4주후(144), 8주후(130), 12주후(98)
  52세 혈당치:169혈당 2주후(166), 4주후(141), 8주후(124), 12주후(92)

  이것은 원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그 학교 약물치료연구소 연구원의 데이타인즉
 한치의 과오도 없을 것이다.

  이 결과에 의하면 치유율은 거의 100%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병세가 호전된 확률은 100%가 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일주일이 지나자
 그렇게 무겁던 발걸음이 가벼워지게 되었으며
 전기한 대로 발가락이 썩어가는 괴저증이 덜해가기 시작했고,
 전신소양증이 그것도 덜 가려워지기 시작했고,
 그 지긋지긋하던 불면증세는 거의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재미가 있었다. 발가락이 셋씩이 따끔다끔따끔,
 쏙쏙쏙 쑤시던 것이 덜 쑤시니까 우선 밤잠이 설치지 아니해 좋았고
 따라서 건강은 나날이 다라져 갔다.
  나의 얼굴을 본 사람은 한달 전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을 비교하면서
 천양지차라고 했다.

  이렇게 하기를 3주일째 들어갔을 때
 나의 혈당치가 190으로 떨어져가고 있었고
 나는 원대한 노년의 계획의 실천을 위한 꿈에 부풀어 갔다.

  여기 기록하는 이 놀라운 경험은 한치의 하자도, 거짓도, 과장도 없는
 시인적 생활의 고백이며,
 또 선승적 내용의 고백임을 적어두는 바이다.





  약효를 위해 술을 끊다

  1986년 12월 00일

  해초류와 맥미두를 한  달째 먹었다.
 다시 66,000원을 주고 두  달째 약품 아닌 식품인 이 약을 구입했다.

  혈당은 180을 오르내리고 있었고,
 나는 오후의 산행(운동시간, 운동요법)에 활기가 차기 시작했다.
 기운이 예전 당뇨 발생 이전과 완전히 거의 같았다.
 이것으로 환희작약할 바는 아니지만
 나의 생활은 거의 평상적으로 환원되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한 가지 곤란한 문제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저녁이면 곡차(불가에서는 술을 곡차라고 별명한다)를 끊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약효가 더욱 확실해지기 위한 일이다. 
 평생을 두주를 싫어하던 나였다.
 저 이태백의 애주송을 늘 외우고 있는 터였다.
 이태백 일대의 최상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석 잔에 대도에 통달하며
    한 말에 자연에 합하느니.

  얼마나 위대한 시인가.
 이러한 작품은 그의(이태백) 기국과 인간과 사상,
 기우의 광대함을 증명해 주고도 남는다 할 것이다.
 그 뇌락함과 그 웅장함이 시의 안과 밖에 횡일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병, 그 지긋지긋한 당뇨병이 완치돼 가는 과정에서
 이 애주가는 지극히 사랑하는 술을 끊었다.
 그랬더니 그 며칠후의 혈당은 그와 반비례해서 급강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술은 백병의 원흉이요, 백악의 근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안양 교도소에 언젠가 가서 장기수들에게 설법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곳 책임자의 말이 여기 들어온 천 명의 죄수 가운데
 거의 전부는 아니라 해도 태반이 넘는 숫자가 술로 인해 입감했다는 것이다.
  술과 여자, 여자와 술, 그것을 빼놓고 인생이 어디 있는가.
 찾아보라. 없다. 여인과 술, 술과 여인. 여기서 인생은 시작되고
 여기서 인생은 끝난다.
 그중 한 가지 술만 해도 평생에 몇 천섬을 마셨을까.
 오장육부가 알콜로 찌들어 있을 것이었다.

  나의 친구 K는 하루에 대두 한 되씩(소주) 십 년을 계속해 먹더니
 간이 굳어서 급기야 가고 말았다.
 일본에서  대학도 졸업한 그분이 어떻게 그렇게 알콜 중독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가.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진다.
 밤중이면 간이 휴식을 취해야 될 시간인데
 그 시간에 일어나서 부엌에서 떨거덕떡거덕하고 술안주를  찾는다.
 그분의 며느님이 나에게 한 말이다.
 술이 깨기 시작한 것이다.
 이십사 시간을 술에 취해 있어야 할 판인데
 새벽녘에 술이 깨니까 다시 마시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간이 경화되어 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60년이나 애음하던 술을 몽땅 끊어버린 것이다.

 저 수주 변영노 선생의 명정 사십년 무류실태기가 생각난다.
 밤새도록 곤드레가 돼 가지고 장곡천정 부근 길가에서 누워 주무셨것다.
 경찰이 지나가는 다꾸시(이때 말로 다꾸시였다)를 불러 태워드렸다.
 이태원 어귀에서 세워 달라니까 차를 세웠다.
 기사 보고 수주 선생이 묻는다.
   얼마요? 기사 가라사대 아주 자동차째 사가시오.
  무슨 말인고 하면 차안에는 가득히 한차 토해낸 것이
 차안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차째로 사가란 기사의 말은 옳았다고 본다.
 그러한 수주 선생으로도 집 판돈 300원을 야금야금 황보추탕에서 다 녹이고
 마지막  술을 마시고 하신 말씀 애류 권덕규 선생을 추모, 
 흠모하고 숭상하는 말씀으로 애류 애류,
 나는 백생을 드나들어도 자네와 같은 흉내는 낼 수가 없네.
 애류! 애류! 하고 권덕규 선생을 곡했던 것이다.

  각설하고 술을끊으니 우선 몸이 더 가벼워지고,
 혈당의 강하속도는 자각증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이만하면 술을 끊은 효과는 100% 나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매일 저녁때면 좋은 안주가 없을까 하고 안주 찾아다니던 생각이 나서
 혼자 미소지어 본다.
 혹시 맛깔진 안주감은 없는가 하고 천방지축 돌아다니던 그 버릇 하나가,
 그 취미 하나가 없어져서 아쉬운 생각이 든다.
 좋은 안주, 좋은 술, 좋은 곡차, 그것을 떠났더니
 무슨 취미,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하지만
 그까짓 것 버리고 나니 아주 홀가분하기만 하다.
 그 아편과 다름없던 곡차, 그 아편과 다름없던 술,
 한두잔 들어가서 도연해지면 그 상태야말로 극락이지만
 그만큼 그 간은 망가져 가는 과정의 자각증상이 없단다.
 벌써 자각증상이 나타낼쯤 되면 불치의 경지에 돌입해 있다는 것이다.






  콜레스테롤의 상당한 개선 효과

  1986년 12월 00일

  대개의 성인병이란 것이 거의 당뇨의 경우는
 고지혈, 혈관의 벽에 지방이 끼기 시작하여
 혈관벽이 두터워지면서 피가 통하는 혈관이 좁아지는 무서운 병이다.

  당뇨병 환자의 70%가 이 고지혈이라니 넉넉히 알 만하지 아니한가.
 혈중지방농도 말이다.
 이 경우는 대개 동맥경화증이 많이 걸리기도 하는데
 당뇨의 경우도 이에 못지않게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까의 그 해초류와 맥미두를 실험한 결과는

 12주간 복용한 경우에

  173-153  236-97  114-104
  173-170  104-93  237-251
  397-217  130-136  178-143
  205 180  145-149  272-202
  167-102  146-137  163-144
  138-123  109-113  229-180
  106-70  142-128  186-154
  152-117  156-153  167-142
  117-78  194-180  174-121
  103-112  149-150  261-201

  몇몇 사람을 제하고는 대개 혈중지방농도도 상당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12주간이니 그렇지 더 장기복용하면 훨씬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필자는 외우 설산에게도 이를 권해서
 당뇨가 아닌 상태에서도 이 해초류와 맥미두를 복용케 하고 있다.

  고지혈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을 보고 경악한 일이 있다.
 혈관의 넓이가 점점 좁아져서 나중엔 바늘구멍만큼의 혈관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니 피가 잘 통할 리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고지혈증이란 것이 그렇게 놀라운 것인 줄은 몰랐다.

  원광대학 의과대학 교수의 통계는 그뿐이 아니다.
 콜레스테롤치에도 좋고 나쁜 것이 있는 모양으로
 나쁜 것은 좋아지고 좋은 것은 더 더욱 좋아진 것이다.

  여기 우선 나쁜 콜레스테롤치가 좋게 된 것을 적어본다.

  223-12주후 168  157-12주후 168
  221-12주후 117  208-12주후 180
  230-12주후 207  219-12주후 X
  221-12주후 200  200-12주후 175
  241-12주후 177  195-8주후 181
  163-12주후 139  204-12주후 194
  162-12주후 160  149-12주후 150
  190-12주후 164  193-1주후 183
  217-12주후 189  259-12주후 220
  178-12주후 121  158-12주후 137
  236-12주후 X  200-12주후 183
  324-12주후 239  212-12주후 168
  255-12주후 198  264-12주후 208
  298-12주후 212  248-12주후 135
  238-12주후 200  204-12주후 169


  이것은 콜레스테롤치가 좋아진 것이고
  좋은 콜레스테롤치가 더욱 좋아진 통계는 아래와 같다.

  34-12주후 38  34-12주후 X
  24-12주후 31  56-12주후 55
  53-12주후 44  34-12주후 38
  46-12주후 51  28-12주후 31
  41-12주후 44  64-12주후 59
  88-12주후 40  42-12주후 45
  36-12주후 34  48-12주후 46
  40-12주후 35  53-12주후 56
  41-12주후 44  41-12주후 56
  88-12주후 40  67-12주후 74
  36-12주후 34  49-12주후 53
  40-12주후 35  30-12주후 41
  41-12주후 30  44-12주후 52
  41-12주후 30  44-12주후 52
  41-12주후 36  55-12주후 61
  30-8주후 34  34-12주후 38
  55-12주후 55  52-12주후 53

  크게 차이가 없으나 상당한 부분
 이것도 개선 증대되어간 것이 통계상 확실하다.
 혈당의 개선으로부터 혈중지방의 제거로부터
 콜레스테롤치의 나쁜 것은 줄고, 좋은 것은 증식한 것 등이
 통계로 나타난 이상, 그것을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뇨병을 정복하다

  1986년 12월 00일

  이제 혈당치가 180으로 하강하였다.
 320에서 두 달 동안 맥미두와 해초류를 먹고
 이만큼 체질이 개선되었으니
 실로 이것은 즐겁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가장 큰 자각증상의 하나가 밤이면 쑤시고 따꿈거리던 발가락이
 띵하기만 하고 쑤시는 것은 완전히 없어졌으며
 팔목 또한 띵하던 것이 거의 다 나아서 아무런 통증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죽음과 같은 당뇨병을 앓다가
 이제 다행히 당뇨병을 완전 정복해 가다니,
 그 불치의 병이요, 그 완치라는 것은 영원히 없다던 당뇨병,
 조절만이 최고의 능사라던 당뇨병을 거의 완전히 정복해 갔으니
 그 장정이야말로 모택동 서북대장정에 비교할 만하다
 할 것이다.

 요즈음 나는 하루에 구보(달리기 뜀박질)를 4,200보씩 매일 계속한다.
 그 위에 만보계가 내 허리에 채워져 있음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만보씩 하루에 걸으면 또 뛰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에 4km 이상을 뛰는 것이다.
 뛰어서 남 주나... 뛰면 뛸수록 심폐기능이 강화되어
 장수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만 산에 가지 않아도 언덕 오르기가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심폐훈련을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강도 그냥 앉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니 여기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속에
 당뇨에 신음하시는 분은 우선 필자가 먹는 식품을(그것은 약품이 아닙니다)
 규칙적으로 들고 제대로 운동요법을 게을리하지 아니하면
 당뇨의 극복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약물요법, 식이요법, 운동요법, 이외에
 지식요법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손자병법이 아니라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을 알고 자신을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 라고 하였고,
 당뇨병과의 싸움도 하나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그러므로 전쟁엔 기필코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반드시 승리할 수가 있다.

  나는 이상종 박사의 당뇨병의 생활요법이란 책을 백번도 더 읽었다.
  당뇨병에 대하여는 거의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나 할까.
 이상종 박사(고려병원 내과)의 저서를 읽으면
 당뇨병의 치료와 그 상식에 대해 아주 자상하게 쓰여져 있다.





  당뇨의 혈당이 100전후로 강하하다

  1986년 12월 00일

  내가 당뇨병 특효약인 이 해초류와 맥미두를 먹은 지 석 달이 되었다.
 이제 혈당은 105로 거의 완전히 원상으로 복귀하였다.
 100전후가 평상치라고 들었다.
 그것이 어떤 연고로 380,340,320을 오르내렸는지 알 수 없다.

  당뇨성 혼수상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항상 어린애들 모양 사탕을 가지고 다니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른다.
 실로 그때를 회상하면 그냥 아찔하기만 하다.
 그 완전한 무력증, 그 허무한 탈력증,
 그 철저한 맥살이  없던 생각을 하면
 이즈음 새로 당뇨가 발병하여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이 책을 읽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내가 만일 발생초기에 이와같은 완치당뇨경험담이 있었다면
 천리를 가서도 구해 읽었을 것이다.
  아득하기만 하던 당뇨병, 당뇨병의 만연,
 그것은 전염병이 아닌데도 전염병처럼 만연해가기만 한다.
 문명병이라고나 할까.

   무슨 까닭으로 당뇨병 환자가 그리 많이 생겨나나요?  했더니
 한 전문가는 수입량이 20만톤이 넘는 상태에서
  고기만 잔뜩 먹고 운동은 하나도 하지 않으니
 당뇨가 생길밖에 도리가 없지 않소.  하고 대답하였다.

   운동부족, 그것이 주요 원인이다.
 한 정거장도 걷지 않고 타고가려는
 도시인의 얄팍한 생각이 당뇨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혈당 105의 원상으로 돌아간 필자는 이제 아무런 당뇨병에 대한 미련은없다.
 자못 그 어려운 긴 과정을 어떻게 해서 지내왔는지
 지금 돌아다보면 망망할 뿐이다.
  최초의 당뇨병이 발견되었을 때의 그 절망적 상념,
 그 아득한 암흑의 시간...
 온갖 수백 가지 민간요법과 토속요법이란 요법은 총동원해서
 살아갈 길을 찾아 방황하던 긴 터널...

  이제 그 캄캄한 터널을 빠져 나오니 환한 광명이 눈앞에 전개된다.
 활력이 넘치는 생활,
 활력이 창일한 생활,
 활력으로 가득한 생활,
 활력과 희망으로 가득한 생활.
 비록 나이 74세의 고령에 이르렀으나
 555 아직 100m를 18초, 19초, 20초대를 주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청년노인이 바로 나인 것을 자각한다.

  그리고 백련암 큰스님의 뒤를 이어 이 나라에 선도를 울흥시킬
 큰 세기적 사명을 지닌 땡초...
 스님의 높으신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을 만한 큰일을 해야 할 내 남은 인생.

  부산과 서울 두 곳에 설법도량을 갖고
 진각국사의 선문염송 30권을 삼 년씩 걸려 강독을
 마칠 계획을 우선 실천에 옮겨야겠다.
 그것이 노후의 내 유일한 희망이라면 희망인 것이다.

 왜냐하면 선문염송을 강론할 만한 한문세대도
 나의 대가 지나면 어려울 것 같아
 그 긴 선문염송을 강론코저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강론에서 우수하고 신심이 강한 엘리트들만 골라
 강론을 할 예정이다.
 그밖의 일이야 많겠지만 우선 이 일은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모든 생리적 형상이 당뇨병 앓기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희던 머리카락도 점점 검은 머리가 늘어가는 것을 보면
 회춘장생활 징조인 모양이다.

  무병하게 살다가 조용히 길게 누워 앓지 않고
 쉬운 방법으로 열반에 드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당뇨병,
 그 병으로 고생하실 수백만 우리나라의 한창 일할 사람들의
 참담한 생활,
 그분들의 생활이 이 책으로 말미암아 병을 치료하고
 나와 똑같은 건강한 사람으로 회생했으면 하고 비는 것이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관음께 기도하는 바이고, 비원하는 바이다.





  백련암 스님 작품 개작

  1991년 10월 00일

  내가 당뇨병에서 벗어난 지도 여러 해가 지나갔다.
 요즈음의 나는 언제 당뇨병이란 병에 걸려 보았는지 기억조차 아득하다.

  맥미두와 해초류로 복합된 식품은 요즈음도 계속해서 먹는다.
 피가 맑아지기 때문이다.
 피가 맑아지면 산성 체질에서 약알카리성 체질로 변하는 것이다.
 알카리성 체질은 젊은 체질이다.
 젊은 체질에 성인병은 없다.
  나의 요즈음은 억척같이 바쁘다.
 몇 해째 번역해오는 선시총서 열 권을
 겨우 4,000장밖에 번역하지 못하였다.
 도합 일만장의 긴 원고다.
 이 책의 첫권은 벌써 OK교정이 나에게 와있다.
 한두 달 후면 책이 나온다.
 이 책이 나오면 제일 기뻐하실 분이 나의 법사 스님이시다.

   그놈 늙은 녀석이 게으름 피우지 아니하고 꽤 근면히 일을 하였군.
  하는 칭찬을 받고 싶은 것이다.

  원고 일만 장이면 보통의 양이 아니다.
 굉장히 많은 양의 작품이다.
 이 열권을 다 번역하여 우리 백련암 스님께 바치면
 얼마나 반가워하실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소년처럼 뛴다.
 늙으막 난 내 상좌가 형편없는 놈은 아니로고... 하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얼마 전에는 편치 않으시다는 말씀을 듣고도 불효를 저질렀다.
 가서 뵙지 못한 것이다.
  어느 신문에 큰스님 최근 작품이 발표된 것을 보고
 나는 크게 큰스님 건강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스님의 시를 외람되게도 내 맘대로 고쳐서 스님께 보낸 일도 있었다.
 웃으시면서 읽으라고 말씀드리고 외람되히 스님 작품을 고쳐보았다.

    천 부처 일만 명 큰 스님들 
    용광로에 한 점 눈송이로다.
    낮잠 깨어 겨우 푸른 창밖을 내다보니
    떨어지는 해가 푸른 뫼에 걸렸어라.

  아무리 생각해도 홍로일점설이야 별일 없는 표현이지만
 낙조괘벽산, 낙조가 푸른 산에 걸렸어라 하는 표현이 마음에 걸려

    일천 부처 일만 명 조사스님들
    낱낱이 푸르싱싱 힘이 있어라.
    낮잠 깨어 겨우 창밖을 내다보니
    푸르른 안개가 선상을 둘러싸네.

  아마 이 어리석은 상좌의 글을 보시고 미소지으셨으리라 생각한다.
 스님의 작품을 약간 고쳐 본 것은
 다만 스님의 건강만을 염려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내 근심걱정대로 백련암 스님이 병을 앓고
 서울에까지 왔다 가신 일을 들었었다.
  아아, 당뇨병은 어디로 도망갔는가.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쓰고 마치면서 나는 많은 감회에 젖는다.

  당뇨병에 걸린 여러분께 진실로 알리노니
 나의 치료법대로 하되 장기복용하라는 것이다.
 혈당이 좀 떨어졌다고 해서 약을 끊지 말라는 얘기다.
 장기복용하면 전체 수명에서 10년에서 20년은
 생명의 연장을 얻을 것이다.

  현재의 나:신장171, 체중 73 kg, 혈압 155~90, 혈당 100

  중증당뇨 때의 나:신장171, 체중 67 kg, 혈압 200~120, 혈당 370

  이렇게 나의 전부를 토로해 놓으며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건강을 되찾기 바란다.


      당뇨 치료 특효 식품 배합
  ===================================================
  ==  그것은 약품이 아니고 식품이었다.              ==
  ==  한 종류 보리, 현미, 콩 그래서 맥두미라 해서   ==
  ==  평상시에 우리가  먹는 식품인 것이고           ==
  ==  하나는 그것도 완전히 식품인  것이니           ==
  ==  다시마, 미역, 김, 돋나물 등 해초류였다.       ==
  =====================================================
  ==  해조분말 30%,                                  ==
  ==  율무배아 및 내배유 25%,                         ==
  ==  현미배아 및 내배유 24%,                         ==
  ==  대맥 20%,                                      ==
  ==  탄산칸슘 1% (미역40%, 다시마30%, 돛20%, 김10%). ==
  =====================================================